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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파울 클레 스토리

어떤 예술가의 현실인식

클레의  이야기를 계속  올리고 있습니다.

 

 

 

뮌헨의 학교 수업에만족하지 못한 클레는  고대와  르네상스 시대를직접 눈으로

확인함으로써 도약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했다.

그의일기는 우리에게   다른 면모를 보여  주는데  그것은 자신 앞에 놓인

모든 순간은 뼈아픈  시련과  문명에 대한  충격적인  자각이었다.

고대  문물에 대한  엄청난  감탄에 대해도 불구하고 클레는 고대  사상은

이제  쇠퇴하였고  그것을 흉내내려는  어떠한  것도  필요치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재정난으로 인한 베른에 있는 가족에게  돌아온 그는  모든 것을

필연이라고  받아들인다.자신의  예술 세계가 진일보 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아우그수트  데투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은  천지를  창조했지만 인간은  수련을  통해  자기 자신을창조한다.'

 

클레는  현실이 비극적이라는것을 발견했다.

미술  분야에  있어서  당대  비극적  표현의 3대  전통자들은  고야,반고흐, 앙소르 였다.

클레는비록  고야는 아니었지만 고야처럼 비극적  표현을 하고 싶었다.

우리는 1903년  1905년사이에 만들어진 그의 에칭  작품들이나

[마차있는 거리]에 나타난 그의 세계관이  지극히  염세적이라는사실을

알아야  한다.1901년 봄, 클레가 이런 사조에 빠져있을  때쓴글을 보면

 

'나는 자주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미에 상극되는 것  즉,  풍자와 우화를 그림으로써  더 많은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있다고  그러나 모든 것이 다그런것은아니다.

나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그 아름다움을 그대로  표현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먼  장래의 웅대한  목표이다 나는  반쯤 의식을잃은 상태로,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좁은  길위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그 좁은 길은 내 인생보다 더 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반드시

그 좁은길을 온전한 정신으로  지나가야 한다."

 

1903년  12월  다시 그의 일기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는데 이런  문장들은

그가  느끼는  비극과 맞서  싸우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것에서  이런 글이나오게  된다.

 

 

 

'두개의 산이 있다.하나는 빛과 투명함이 지배하는  신들이 사는  산이고,

또  하나는  짐승이 사는 산이다. 그리고  두개의 산은  인간들이

사는  밝은  계곡으로  이어져  있다.  인간들  중의 하나가  자신이

짐승과  신의세계를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도  모르는

세상에 대해  무한한 향수를  느끼게  된다.'

 

성서의 다윗의  시편 '계곡의 그림자'는  언제나  클레의 인생의 지침서가

되었다.

클레의 시도는인간이 예전에 잃어버린 타고난 순수함의 세계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전지전능한 세계와의 혼돈  속에서 뛰쳐나가고 싶어하는

충동  같은 것이었다.인간의 운명이란 여러가지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고,

비극이란 이런 어쩔 수없는 상태가  계속되는  아픔에 대해서

깨닫는  것이라 할  수있다.

그러나  클레는 좌절하지 않고 비극과  정면으로  부딪쳐서 무지의 세계를

극복하리라고 그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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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성장해서 어린시절을 뒤돌아본다고 해서  예전의 순수함을 되찾을 수는 없다.

브라크는 '인간은 도랑 길을  파서 강줄기를  다른 방향으로 돌릴 수는 있지만

그도랑을 통해 강을 역류시킬  수는  없다.'

고  말했듯이 과거는  어느 누구의 힘으로도  돌이킬 수 없으며  어린시절을 다시  오게

할 수도없다. 보들레르의  저서 '[다시  얻은  어린시절]에서  나오는  신동은

예외일지  모르나  그 것또한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바흐나  모짜르트가 이런  비극적인 요소를 극복할 힘을  가졌다는 것을 믿지 않고서는

그들의 연주는  물론이고 그들의 음악을 듣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바흐는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자신의 비극적 상항까지

초월함으로써 완전한  순수를  되찾았던  사람으로 바흐의 e장조  콘체르토에서

우리는  충분히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