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신념이 묘비에 새겨져 있듯이 여전히 시인으로
남아있는 그화가는 독일의 낭만주의를 자연숭배로 되돌린다.
자연숭배 사상은 에른스트 융거의 작품에서 표현되고 있는
것과 같이 우주의 초자연적인 서정성의 세계인 호프만스탈과
노발리스와 네르발로 되돌아간다.
자연숭배 사상을 꽃,동물, 돌,별과 같이 표현하기전에 에른스트 융거는
식물학과 상상력을 결합시키고 싶어했고, 미개한 상태와
지적 추구의 상태를 결합시키고 싶어했으며, 기괴한 것과 수학을
신비스러움과 독일주의의 신중함을 결합시키고자 했다.
세상을 창조시켰던 힘들의 상호작용은 어린이가 그들의 부모들을
흉내내면서 노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방되어져 이루어졌을거라고
클레는 말한다. 무언가를 호기심으로 흉내낸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것의 당연한 성질이고 창작력이 진보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과 마찬가지 이다.
모방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타입과 디자인으로 변화하는
것에서 부터 그림그리는 법을 다시 찾는 것과 같은 일이며
매우 신비한 존재를 얻는것과 같다.
예술가들은 자신만의 세계를 표현하는 두가지 방법에 도달하기 위해
두가지 생산적형태의 힘을 스스로 기능시켜 서로를 돕게한다.
그하나는 선이고 나머지는 색이다.
선이란 과연 무엇인가? 살아있는 독립된 개체는 공간 속에서
나타나는 움직임으로 선을 결정하고 그 윤곽을 뚜렷이 나타낸다.
선은 살아있는 생물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선은 자연이 선물한 인간 근육 뼈와 같이 육체의 구조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선이 면적과 체적으로 변할 때 선은 선의
움직임, 진행과 선의 삼차원적인 구조와 혼합되어야한다.
곡선에 관한 길레스 델루즈의 책에서 '정신적 곡선'이라는
제목의 장을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변화 많은 곡선의 이상적 유전인자는 굴곡이다.
굴곡이야말로 진정한 원소이고 신축성의 중요한점이다.
클레의 관점에서 보면 굴곡은 자연적으로 움직이는
선의 유전적 원소이다. 이러한관점은 바로크문화와 라이프니쯔와
어느정도 부합된 것인 반면 외부의 힘에 의해 운동이 일어난다는
데카르트의 철학을 믿는 칸딘스키의 시각과는 반대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클레에게는 '비개념적 개념인 비모순'이라는 점이
굴곡을 지나간다. 점은 굴곡 그 자체이고 이 점에서
접선은 곡선을 지나간다.
그것은 구부러진 지점이다.
클레는 세계의 계속되는 형태로 시작한다. 첫번째는 굴곡을 그린다.
두번째는 라이프니쯔가 말했듯이 형태가 정확하지 않고
순수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나타낸다. 곡선을 가지지 않는
직선은없다. 그러나 아주 작은 부분 뿐만 아니라 큰부분에서
결합된 다른 어떤 것도 가지지 않은 한정된 자연에서는
굴곡이없다. 만약 그것이 원자였다하더라도 어떤이에도
확실하고 중요한 공간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세번째는 부족한면을 그늘 지우고 굴곡의 중심에서 오목함을
강조하고 굴곡 점에서 한면을 다른면으로 변화시킨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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