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의 주위에 다양한 예술가들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노발리스와의 관계가 특별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클레는 예술 작품을 형성시키려면 모든 자연적
형태와 마찬가지로 내적 법칙을 준수 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예술은 창조와 동의어이다. 그는 이론적 연구를
통해서 그리고, 자연의 명백한 형태와 내적 대화를 통해서 얻어진
조형 미술의 법칙을 분석하려고 노력했다. 클레에 따르면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은 조형 미술 작품에서 뿐만아니라 자연에서도 발생하고
쇠퇴하는 모든 것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상호운동을 통해서 창조적인 일을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술은 외부 형태가 감추는 창조적 정통성을 보이게
한다. 첨가하여 모방으로 만들어진 살아 있으면서 예술적인 이미지
사이의 내적 관계를 여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정의된 양극성을
클레는 사용한다. 클레의 작품에 나타나는 극도의 개인주의는 예술 작품을
창작하는 것과 삶을 창조하는 것 사이의 내적 관계를 여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정의된 양극성을 클레는 사용한다.
클레의 작품에 나타나는 극도의 개인주의는 예술 작품을 창작하는 것과
삶을 창조하는 것 사이의 유사한 점을 보여 주려는 넓은 의미를
나타낸다. 그리고 개인주의에서 우주에 이르는 것과 상징적인
것에서 원형에 이르는 것을 직접 보여 줌으로써 그림을 보는
사람을 놀라게 하려는 의도가 나타난다. 숨길수없는 저 세상에
관한 암시와 감정이 그의 작품의 기본적인 부분이라 할지라도
그는 항상 이 현세를 기억하고, 자기 자신을 정신적인 세계에 완전히
맡기지 않는다.
비록 그의 천사들이 조상의 실체에서 부터 빼앗아온 살아 움직이는
물체라 해도 . 클레는 나찌즘이 나타나는 것을 직접보고 죽음에 대한
염세주의적 매력을 발전시킨 세대의 구성원이었다. 그의 병과 연관된
죽음의 매료로 그의 몇 작품에는 극도로 드라마적인 요소가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그 그림들을 정확하게 해설하려면 우리는 그의 창작 활동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자극이 되었던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 자극이란
티크나 쉴레겔이나 노발리스에 의해 규정된 아이러니(반어법)이다.
불운한 때에 아이러니로 무장을 한다는것은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로 부터
어느 정도 분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매우 낭만주의적인 태도인
아이러니는 그가 죽음과 어느 정도 가까와지고 일할수 있는 마지막까지의
권리를 확실하게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의 모든 작품은 '창조적 고백'의
아래 문구를 실증하고 있다. -예술은 알려지지 않는 극도의 진실과 무의식적으로
게임을 하는데 결국 예술이 이긴다.-
클레는 고전주의 작품들을 모방하는 데서 벗어났다.그는 물체난 대상을
그대로 그리는 대신에 형태나 내용이 가지는 정확한 문제를 활용하여
변형시킨 뒤 정신적인 이미지를 형성하여 소묘를 할 때나 색칠을 할 때
변화된 내용을 만들었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그림 역시 뼈대가 있고 근육이 있고 피부가 있다.
우리는 그림의 특수한 조직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인간의 나체 그림은
인간의 해부학 법칙에만 따라 만들어 질수는 있다. 우리는 그림의
뼈대를 만들어 그림을 시작한다. 이 기본이 되는 뼈대보다 얼마나
나은 작품을 만드는가 하는 것이 선택의 문제이다.-
달리 말하면 대상의 부차적인 구조 때문에 그림의 본질적인 구조를
혼동하여 망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클레는 형태와
내용의 관계를 피카소나 브라크,마티스가 했던 것과 같은 방법으로
해결하지는 않았다. 1905년 클레는 주제의 내부 외부 세계의 상호 침투에
대한 에른스트의 연구를 알게 되었다. 그내 외적 세계와 자연과의 관계를
보면서, 클레는 자연을 그대로 베끼는 것에 반대하게 되었다. 형태와
내용의 관계는 전체적인 분위기라는 중재자를 통해 작품에 통합된다.
전체적인 분위기란 마술적 자아라는 노발리스의 개념을 일컫는다.
노발리스와 클레 사이에는 몇가지 유사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제자'라는 말을 예전 그대로의 뜻으로 놓아두어야 한다. 1924년 예나
강의에서의 한 구절은 이 주제에 있어서 매우 명백하다. 다시 떠오르는
낭만주의를 생각하면서 클레는 확신했다.
만약 내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불길한 힘을 우주까지 퍼지도록
내버려둔다면 거대한 전체성에 용해된 낭만주의 즉, 또다른 변질된 낭만주의를
위한 감동적 형태의 즉흥적인 열정은 포기하겠다.-
이 또다른 낭만주의는 1772년 5월 2일 일식 일에 태어난 프리드리히 폰 하이덴베르그의
낭만주의가 아닐까? 가장 확실한 증거로 [시이즈의 제자들]의 첫 부분에
나오는 실제 인용문을 읽어보면 된다.
-인간들은 여러 길을 걷는다. 사람들은 길을 따라가면서 비교하는데
날개에서 알껍질에서, 구름에서, 눈에서, 바위형성에서, 먼 바다위에서,
산의 안밖에서, 식물과 동물에서, 인간에서, 별에서, 유리잔의, 한 조각에서
우리가 만지고 비벼 대는 송진의 한덩어리에서, 연인주위에 떠도는
광채에서 , 하나의 우연한 기회와 같은 모든 것으로부터 발견되는
부조화된 문서의 한 부분으로 존재하는 인간들을 볼 수 있다.
인간은 이 경이로운 새 문서의 문법까지도 해독할 수있는 열쇠가 있다는
것을 예감한다.
이 하나의 우연한 기회는 클레의 친구인 한스 아르프가 그의
[형상과 별자리]에서 격찬한 것과 같다.
그 둘 사이에는 충분히 역설되지 않았던 한정된 관계가 있다.
아르프와 비슷하게 파울 클레는 그의 작품에 강한 특성과 운치를
주는 추상적인 것과 은유적인 것 사이의 모호한 관계를 계속 발전시켰다.
노발리스의 뒤를 따라 클레와 아르프는 20세기 예술이 개척하는 두 영역
즉 추상적 영역과 은유적인 영역사이를 구별하는 가느다란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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