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미- 파울 클레 스토리

청기사 시절의 이야기-18번째

18번째 클레의 일대기

 

 

미에는 규칙과  같이 공식화된 것은 없다. 단지 학문적인 것만을

중시하는  것에 대한 증오만이 있을 뿐이며 자연의 외부 형식에 대한

포기만이 있을 뿐이다.

칸딘스키의 말을 빌리자면 '내적인 필요'에의한 믿음만이 존재할 뿐이다.

 

클레를 예술가로서의 활동 측면에서볼 때, 1911년은 전환점이 되는

한 해 였다. 왜냐하면 그는 어느정도 상대적인 고독 속에서 일을 해나가긴

했지만 뮌휀에살고있는 예술가들을 꾸준히 만났기 때문이다.

그의 친구 알프레드 쿠빈은  그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려고 애썼고

그의 어릴적 친구 루이  무알리에게는 그 유명한 12월 청기사 전시회가

있기 바로 전에 마케와 칸딘스키 마르크를 클레에게 소개 시켜주었다.

 

클레의 아들 펠릭스는 여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어 놓았다.

[이 당시 뮌헨의 예술적 감흥은 엄청난 것이었다.예술의 역사는

오늘날 그 시대의 기운을 중요시했다. 오랬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예술가 모임 '청기사'

를 지탱할 수 있게 만든 사람은 마르크와 칸딘스키였다.

이 두 화가는 내 부모님들의 몇 안되는 친구들 중의 하나였다.

칸딘스키는 특히 내가 좋아했는데 내가 집에서 심하게 장난치면서 놀면

내 부모님들은 나를36번가 아인밀러 거리에 보내서

칸딘스키와 그림을 그리며 놀게 했다]

 

 

 

클레가 청기사에 참여할 즈음에서 그는 예술가로서의 견습기간이

끝났다고 볼 수있다. 칸딘스키와 마르크의 작품을 보면서 그의 강한

내적 세계에서 나오는 자신만의 예술적 이상향에 대해 강한 확신을 가졌다.

클레는 그보다 나이가 많은 칸딘스키를 친구이자 스승으로 생각했고,

마르크와의 우정을 그가 여태껏 가졌던 그 어떠한 것보다 소중히 여겼다.

 

청기사 전시회덕택에 뮌헨에서는 프랑스,이탈리아,러시아의 전위예술을

한 곳에서 볼 수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