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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파울 클레 스토리

천진난만한 어린이 같은 클레의그림 -35

천진난만한 그림의 세계를 보여준 클레의 수채화는 그시대의

화가나 평론가들조차도 어린이나 미친사람의 그림이라고

비꼬기도 했지만 그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천재성의 작품이라는 호평이 쏟아졌다. 

 

 

 

클레는 천재를 '제도가 낳은실수'라고 그의 학생들에게 말했다.

개념 예술(작품을 해 나가는 과정을 예술이라고 여기는 예술)의 라이벌을

자원이 빈약한 예술이라고 할때 1922년 7월 3일의 여섯번째 실험의

주제였던 '일반적인투시도'의 상황에서 바우하우스 학생들에게

가르쳤던 사상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예술적 상상은 특별한 성질을 가지지않는다.예술적 상상의 목적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데 있다.] 1922년에 쓴 마티스의 글에서도

비슷한 문구를 찾을수있다.

[감각이 없으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화가가 가르칠수있으려면

그는 실제 작업에서만 나타나는 함축적이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야만 한다. 스래서 예술가들의 글은 새로운 중요성을

가지게 되는데 1917년 테오 반 되스부르크(theo van doesburg네델란드 화가)

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그들의 예술에 대한 글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글은 그들의

창작적활동의 확대이다.' 시적 영감과는 거리가 먼 단순한 이 세상에서

클레의 작품이 유명해 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그것도 사실은

1925년 부터 소수의 파리 작가들과 시인들에 의해서만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맨먼저 대중에게 클레의 작품을 내 놓은것은

초현실주의자들이었다. 그리고 파리의 바빈 라스파일과

파울 에뤼아르에 의해 발견된 클레의 39점의 작품이 10월 21일부터

11월 14일까지 그화랑에 전시되었다.

 

 

 

엘뤼아르는 이렇게 쓰고 있다.

'바이마르의 위대한 화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밝음이나 우아함, 정신이나 매력이나 세밀함은

따로 언급할 필요없이 그의 것이다. 어느누구도 클레의

우아한 수채화와 끊임없이 새로운 데생중 어느것이 더 좋다고

해야 할 지를 모른다. 이 둘은 모두 우리같은 바지에르와 로이티론 같은

아마추어 에게는 분명히 아이들의 그림이나 미친 사람이

그린 것같이 보일것이다. 심오한 상상력을 가진 이러한 우아함은

보통 시인들의 속성이지만 오늘날에는 작가의 소중하고

섬세한 부분들을 자기방식으로 판단하고 해석하는 관객에 의해

유치하다거나 미친것으로 불려진다.'

 

 

 

위의 전시회가 있기 바로 전에 클레는 바우하우스의 친구인 로타르 쉬라이에에게

"비평가들은 나의 그림이 어린애들의 서투른 그림이나 낙서와 비슷하다고

자주 말한다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내 아들 펠릭스가 그린것이 내가 그린

그림들보다 더욱 가치있는 것이 되겠지. 내 그림은 너무 자주 내 뇌를 통해

한방울씩 한방울씩 없어지겠지.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라네.

의사들은 내 그림을 보고 정신나간 사람이 만든 작품같다고들 한다네."

 

그리고 클레는 방금 전에 출판된 프린초른(prinzhorn)의 유명한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의 창작 활동'이란 책을 읽고 그에 대한 찬사를 쓰기 시작했다.

'정말로 숭고한 예술, 정말 정신적인 시각,그책은 내가 보호시설로 가고 있다는

사실외에 어떤 것을 말하고 있는가? 물론 이전세계가 미친사람으로 가득찬

보호시설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음없이...'

20년 후에 그의 작품들은 나찌에 의해 '퇴폐 예술'이라고 비난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