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와 초현실주의자 작가들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시대에 가장 큰 이슈를 가지고 활동하는
작가군들이 바로 초현실주의였다.-37
초현실주의자들은 항상 클레의 작은 크기의 작품에 대해 칭찬했다.
시인으로서의 그들은 클레의 예술적 경제성을 이해하였고, 한정된
의미를 통합시켜 사용하는 장점을 깊이이해했다. 부지불식간에
클레는 이런 시적인 측면에서는 선구자가 되었고 엘뤼아르와
트리스탄 차라 는 그와 직접 만났다.1928년 4월에 엘뤼아르는
클레에게 몇개의 시를 보내면 그 시들에 대해 삽화를 넣어
달라고 간청을 했다. 1929년 에 그려진 '눈과 귀'라는 그림에
감화 받은 차라는 아래의 극히 음악적인 시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사람을 위해 클레에게서 에칭 작품을 하나 얻었다.
'나는 우리가 자신들에게 꿈이라고 불리는 이 중심부의
언어를 만들어 내는 열의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거주자들이 있는 방의투시도]라는 그림을 본 브르통은 내적 정신력 측면에서
클레가 바이올린보다 더욱 우아하다는걸 깨달았으나(1929년에 필립 수포는
'클레는 절대 놀라지 않을 것이다.'라고 썼다.)브르통의놀라움은
폭발적이라거나 개방되어 있다기보다 훨씬 더 정제된 것이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클레를 매우 존경했으나, 클레는 정식으로 초현실파에
몸담지않았다. 그리고 이미 라인강보다 더 유명해진 그에게는 어떠한
그룹에 속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비록 그가 청기사파와
어울리긴 했으나 그런 것은 참가자라는 의미보다 관찰자라는 의미로
보는 것이 적절한 것이다. 게다가 클레와 초현실주의자 사이에는 많은 부분에서
상반되는 입장을 보였다. 먼저 그의 예술가에 대한 개념은 초현실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랐다. 그가 바우하우스에서 교수로 있을때 그는
수단과 목적을 알고서 그의 학생들에게 그 수단, 목적에 대해 확실히 가르쳤다.
예술이란 우연적이고 자연발생적이며 영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클레를 아연실색케 했다. 그리고 완전히 낯선 것이었다.
아무리 클레 자신이 미쇼가 아주 권위적으로 불렀던 '내부 세계'를 그렸지만
그는 브르통이 제시했던 것과는 전적으로 다른 길을 통해
내적세계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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