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파울 클레 스토리 썸네일형 리스트형 클레의 제작기법이 발전하던시기 26 클레의작품에 제작하는 기법이 발전하던 시기-26 클레의 기교나 재료등은 학구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고전 예술가들의 기교와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카달로그에 있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1914년부터 그는 색채와 꼴라쥬와 혼합물을 결합시켰는데 이부분에는 분석할것이 여전히남아있다. 유화와 수채화는 석고 작품과 분필로 그려진그림과 납화에 기초하여 그려진다. 그는 종이와 린넨,캔버스와 같은 포장지와 무명실로 된천,전시때나 쓰였던에어 플레인 캔버스를 도화지로 사용하였다. 클레는그의 작품에 필요한 크기와 구조에 맞게 풀질되어진 종이나 풀칠된 줄을 자주 사용하였고 그줄이나 종이의 모양을 고칠때 가위를 사용하기도한다. 가장 평범한 재료로 환상적인 효과를 낼 수있는 그의 능력은 다다화랑의 전시회에서 보여줬다. .. 더보기 클레와 다다이즘의 영향-25 오늘은 클레와 다다이즘과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지요. 클레의 조화된 세계에서 보면 다다이즘[1915년 부터 1924년에 걸쳐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일어났던 회화 조각, 문학상의 반항운동으로 반항적 이고 비이성적인 무의식의 예술 세계]에 대한 그시대의 흥분된상태는클레에게 좀 생소한 것이었다. 1917년 3월 부터 칸딘스키와 드키리코를 포함한 쮜리히의 지도적 예술가들은 클레가 그들과 같은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스 리퀴터(hans richiter)의 말을 빌리면 "정신적 조상들, 클레의 작품은 먼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극락정토로의 길을 보여주는 것 같다."라고 했다. 다다화랑의 개관 전시회때 그의 작품을선보였으며 3월 31일 예술 역사가인 발더마 잘로스는 클레에 대한 강연을 거기서 열었다. 5월 다다.. 더보기 아들이 기억하는 아버지 클레 -24 클레의 아들이 이야기한 내용입니다. -24 클레의 아들에 대한 사랑이 참 지극합니다. 아버지로서의 클레의 애틋함이 느껴지구요. 계속해서 뮌헨에서는 일년에 두번 박람회가 있었는데 박람회가 열리면 회전목마를 탈 수 있는 장소도 생겼고 사격 연습장도 만들어졌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아버지는 내가 꼭두각시 인형극을 볼 수있도록 많은 돈을 주시곤 했다. 그리고 나서 아버지는 벼룩 시장에 가서 오래된 그림과 사진을 즐겨 사시곤 했다. 두시간 정도 공연되는 멋진 바바리안의 인형극을 보고나면 아버지는 나를 데리러 왔다. 집으로 돌아오는길에 나는 그의 그림액자를 같이 들어주곤 했다. 아버지는 자주 그림그리기를 멈추고 나의 꼭둑각시 극장 앞에 앉아 파이프를 물고 고양이 프리포유와 함께 앉아있곤 했다. 그는 단지 구경꾼이었을.. 더보기 아들과의 즐거운 나날들-23 클레의 아들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데요 오늘은 클레의 아들이 아버지에 대한 기분 좋은 기억을 이야기합니다 -23 전쟁이 계속되던 '무시무시한 세계'에 대응하여 그의 작품에는 더욱 더 많은 많은 추상적인 형태가 나타났다. 이런 불확실한 시기 동안 그는 그의 창작품에 대해 끝없이 질문하는것을 멈추었다. 왜냐하면 그 자체로 충분한 상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1915년 그림에서 클레는 입체파 화가의 전문 용어를 사용하여 자신을 표현했는데 그 표현인즉 시인 화가 였다. 시를 쓰면서 그림도 그리는 예술가는 테이블 가까이에 앉아있다. 그는 외부 물체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마치 그의 정신적 상상들을 그림으로 바꾸어 내려는듯이 말이다. 펠릭스 클레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아버지에대한 나.. 더보기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의 만남-22 오늘은 클레와 릴케와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클레는 릴케를 만납니다. 그리고 클레는 튀니지에서 그린 수채화를 보여주는데 클레의 그림에 릴케는 그 그림을 보고 이렇게 감화를 적습니다. [그 그림들은 너무 매혹적이었고 흥미로웠다. 그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것은 내가 알고 있는 카이르반이란 도시를 많은 사람들이 그 수채화를 통해 내가 느낀 그대로 볼 수있다는 것이다. 전쟁이 발발하면서부터 나는 이미 사라져버린 물체들을 보면서 이런 감동을 자주 받았었다. 예전에 존재했던 실체들은 전쟁에 의한 정신적 물질적 파편들에서 더욱 뚜렷이 나타나 이 세계에서 흩날리는듯 하다.] 클레는 릴케와 릴케의 여자친구 루 알베르트 라자드를 다시 만났다. 릴케의 여자친구는 다음과같이 회상했다. [화가 클레 덕분에 이집은 완전.. 더보기 튀니지 여행에서 기억들-20 친구들과의 만남이 클레에게 많은영향을 끼쳤음을 알수있는 대목이 많이 보이는데 특히 그가 남긴글들에서 그의 영향을 엿볼 수 있읍니다. 친구들과의 만남 그것은 클레에게 신의 계시와 같았다. 그는 황홀함과 흥분으로 수채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재기(jaggi)박사와 함께 그들은 먼저 바다를 보고 시디보우 사이드에 있는 성 게르마인 근교의 박사의집으로 갔다. 그리고 카르타고와 하마메트를 돌아보았고 수백 개의 회교사원이 있는 카이르반도 구경했다. 그가 도착한 다음날 그의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지난밤 나는 감동으로 가득차 있다. 예술과 자연과 개인 나는 아랍광장에서 수채화를 그렸다. 나는 그림이 그려진 건축물과 도시의 건축에 감명받았다. 나중에 지금의 이런 들뜸이 조금 가라앉으면 나는 조금 더 이성적이 될수 .. 더보기 청기사 시절의 클레-19 클레의 청기사 시절의 이야기 벌써 19번째입니다. 클레는 청기사 시절의 많은 친구들의 교류로 인해 화가로서 다양한 체험을 합니다. 그때의 고백을 들어봅니다. [나의 열정은 차라리 죽은 것이나 혹은 아예 태어나지도 않은 것과 같다. 나는 정열적인 인간성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예술을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모든 동물과 인간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나는 그들을 깍아 내리지도 않고 치켜세우지도 않는다. 나는 차라리 모든 창조물 속에서 용해되어 들어가 지구상의 모든 것에 관계된 형제애 적인 측면에서 나자신을 찾겠다. 땅에서 통하는것은 하늘에서도 통한다. 나의사랑은 원대하고도 종교적이다.] [나는 파우스트와 같은 성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인간과동물. 채소, 광석, 원소와 같은 일반적인 주기적인힘이 있.. 더보기 청기사 시절의 이야기-18번째 18번째 클레의 일대기 미에는 규칙과 같이 공식화된 것은 없다. 단지 학문적인 것만을 중시하는 것에 대한 증오만이 있을 뿐이며 자연의 외부 형식에 대한 포기만이 있을 뿐이다. 칸딘스키의 말을 빌리자면 '내적인 필요'에의한 믿음만이 존재할 뿐이다. 클레를 예술가로서의 활동 측면에서볼 때, 1911년은 전환점이 되는 한 해 였다. 왜냐하면 그는 어느정도 상대적인 고독 속에서 일을 해나가긴 했지만 뮌휀에살고있는 예술가들을 꾸준히 만났기 때문이다. 그의 친구 알프레드 쿠빈은 그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려고 애썼고 그의 어릴적 친구 루이 무알리에게는 그 유명한 12월 청기사 전시회가 있기 바로 전에 마케와 칸딘스키 마르크를 클레에게 소개 시켜주었다. 클레의 아들 펠릭스는 여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어 놓았다. [이 .. 더보기 이전 1 2 3 4 5 6 7 다음